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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돌아오는 밤」

「돌아오는 밤 (4)」, 김유진

by 談담 2023. 2. 23.

  해진은 여전히 내 품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로 그녀가 우리의 집에 진절머리를 느껴 나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진이 사라지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부턴가 식탁 위에 수저를 두 개만 올려놓는 데 익숙해졌다. 이제는 2인분에 맞춰 밥을 짓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매일같이 해진의 방에 들어가 청소를 해주고 나오면서도 해진의 손이 탄 물건들을 전처럼 오래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해진의 수첩에 적힌 마지막 기억은 여전히 영천산에 머물러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미리는 얼마 전 내 요청을 듣고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가, 기자에게 연락해 보겠노라 말한 뒤에는 한 번도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어려운 부탁이었나 싶어 체념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뒤늦은 미리의 연락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일단 만나 뵙고 미팅을 하고 싶으시대요. 언제가 좋으세요?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준 모양이었다. 완곡한 거절일지도 모르는 대답이었으나 그마저도 내게는 의외였다. 해진을 찾기 위해서 전부 취소해 둔 덕분인지 내 일정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언제든지 상관없다.

  나는 염치도 없이 냉큼 대꾸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정말로 언제든지, 심지어는 지금 당장이라고 하더라도 미리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달려갈 열의가 충분했다. 분명 진은 쪽 빠지고 더는 노력할 기력도 남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다행히 미리는 내가 애타기 전에 금방 답을 읽었고 뒤이어서 만날 날짜와 장소를 보내 주었다. 사흘 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있는 작은 개인 카페였다. 나를 고려해 고심해서 장소를 선정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인터뷰를 하러 온다는 기자가 이전에 쓴 기사나 칼럼도 몇 편 추려서 링크를 보내 주었다. 강한석 기자, 그런 이름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다지 신뢰감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어쩐지 불친절하고 무뚝뚝할 것 같았고, 혹시 해진을 자신의 잡지사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쓰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게도 이 이상으로 좋은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미리가 보내 준 순서대로 기사를 열람하면 대부분 자연경관이나 야생동물에 관한 주제가 주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그는 환경주의자이거나 동물 애호가인 모양이었다. 기사의 말미에 작게 첨부된 증명사진은 멀끔했지만, 피부 한구석의 톤이 다른 곳과 다른 것으로 보아 흉터 등을 가린 모양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 그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의 발톱 자국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풀었다.

  내가 부탁했던 건?

  한 번 검토해 보시겠대요. 직접 말씀 나누고 싶으시다고.

  그래…….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라 확신하기엔 어려움이 따랐지만 미리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부정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은 만족하고 외출할 채비를 하기로 했다. 전단지는 그새 전부 동이 나서 남편이 다시 출력하러 나간 참이었다.

  저도 도울 게 있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대답 대신 문자 너머로 그 답변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인숙에서 머무를 때 연락이 온 미리에게 나는 해진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길게 이어지는 침묵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가 차마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중이라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미리는 흔한 위로도, 전화해서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고른 숨소리만을 흘려보내며 내가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듯했다. 기쁜 마음으로 전화했을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순간에는 흔한 거짓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터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니 해진 못지않게 미리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나는 모르는 해진을 미리는 보고 있었고, 그녀를 한 번 만나보면 나도 뭔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없잖아 있었다.

  미리 대신 인터뷰에 나가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며 내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얼마 전 해진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하고 해진을 찾는 전단을 인터뷰 마지막에 함께 첨부하는 거였다. 메이저한 잡지사는 아니더라도 기사화가 되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질 터였다. 나는 해진을 찾기 위해서 해진의 이야기를 팔기로 결심한 셈이었다.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길은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사전에 전해 들은 약속 장소로 걸음을 옮기면 사진에서 본 남자가 먼저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증명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몇 년 더 나이가 들어 있었고, 곱슬기가 심한 머리카락은 목을 거의 다 덮었다. 옷은 그나마 깔끔한 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다지 신뢰감이 드는 인상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 미리와 함께 맞은편에 앉았다. 기자는 우리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적잖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느리게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강한석입니다.” 짧고 투박한 자기소개와 함께 그가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명함도 그의 인상만큼이나 간결하게 필요한 정보만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따님이…… 실종되셨다고요.”

  이내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던 한석이 말했다. 질책하는 듯한 어투는 아니었지만 나는 어쩐지 움츠러들어,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한석은 명백히 고민하는 표정으로 거듭 자신의 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전체의 분위기를 해칠까 우려되는군요.”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를 유지하며 한석이 느리게 읊조렸다.

  “나는 내 딸 찾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신문 세대가 아니라서 아마 잘 보지 않을 것이며, 본다 하더라도 해진의 인터뷰 끝에 그녀가 실종되었으니 찾아달라고 적어두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진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미리는 내 옆에서 한석과 나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차라리 SNS를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SNS라고요?”

  내가 무심코 되묻자 한석이 이번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인터넷 세대 아닙니까, 차라리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올리는 게 사람들은 더 많이 볼 겁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좀처럼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중요한 부분은 인터뷰를 다 끝내고 마저 이야기해 보십시다.”

  한석은 어쩐지 조급해 보였으면서도 동시에 노련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휘둘려 고개를 끄덕였다. 한석이 만족스러운 듯이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 질문을 고르는데, 어쩐지 영상 속에서 미리와 마주 바라보던 해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나마 내가 그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감정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더니, 그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구덩이가 있더군요.”

  그러니까, 영천산에 말이에요. 내가 천천히 운을 떼었다.

  볼 것도 없이 작고 볼품없는 산이었는데도 발을 디딜 때마다 그곳은 마치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착각은 아닐 터였다. 개울가 근처, 해진의 운동화가 떨어져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헤치면 거기에 이질적으로 툭 튀어나온 공간이 하나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것이 누군가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파헤친 흔적이 다분한 무덤이었고, 심지어는 그마저도 시간이 꽤 지났는지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누군가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숨길 수 있을 법한 크기의 구덩이였다. 전신에 오한이 끼쳐 들어왔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아마 해진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최근의 기억부터 서서히 좀먹혀 갈수록 그때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해진의 현실이 되어갔을 것이다. 구덩이에 몸을 끼우듯 밀어놓고 바깥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은 다 곪아 문드러지는 몸을 이끌고 올라오는 연어 떼였다.

  영천산에서는 언제나 숱한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남편의 신발이 현관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거실에도, 남편의 방에도 그는 없었다. 내가 귀가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은 전혀 의외의 공간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해진의 방이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추운 날씨인데도 반 팔 차림이었다.

  “당신 뭐 해?” 내가 물었다.

  남편은 말없이 다시 해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가자 남편은 해진의 물건들을 죄 꺼내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드물게 집중하는 듯 미간을 한껏 구기고 있었으며, 내가 옆에서 무얼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방의 한쪽을 차지하는 택배 상자들 안에도 잡동사니가 가득이었다. 이제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나 옷가지, 어릴 적 장난감 같은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거듭 언성을 높여서 남편을 불렀다.

  “당신 지금 뭐 하느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정리하고 있짆아. 남편이 대답했다.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마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한번 해주고 싶었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간파하기라도 한 건지 남편이 뒤이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해진의 물건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손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팔을 걷어 올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도 이미 남편을 도와 해진의 물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있었다. 해진의 손을 탄 건 분명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없는 물건들이 아무리 정리해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남편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전과 같이 차가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 바쁘게 해진의 물건들을 분류하고 나누던 남편의 손이 멈추었다. 자연히 내 시선도 그의 쪽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단조로운 녹색 표지의 얇은 책 한 권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그 책이 무엇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3년 전 해진이 미리한테서 받아온 자서전의 완성본이었다. 해진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었는데, 해진의 자서전이 가장 앞에 있었다. 이 책을 받고 나서 해진이 우리에게 보여줬을 때 읽었던가, 읽지 않았던 것 같았다. 만약 읽었다면 지금 이렇게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리는 없었으니까.

  남편은 자연스럽게 그 책을 내게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분류 작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의도적으로 내 쪽을 보지 않는 듯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을 목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물었다.

  “당신은 안 봐?”

  “, 안 봐.”

  “?”

  “그냥.”

  영양가 없는 대화를 짧게 나누는 동안에도 남편은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또 그만큼 몰입한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런 남편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걸 보다가, 끝내 책을 완전히 펼치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 둔탁한 소리에 뒤늦게 남편이 흘긋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 나는 책을 상자에 넣어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상자가 묵직하게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버릴 물건들은 어디 둬?”

  “봉투에 담아.”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과연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두어 개가 곳곳에서 자신에게 담길 쓰레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중 가장 홀쭉한 봉투에 다가갔다. 지갑을 열어 안에 보관해 두었던 기자의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쥔 손이 빨려 들어가듯이 봉투의 입구 안으로 향했다. 서서히 손가락의 사이가 벌어지고,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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