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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돌아오는 밤」

「돌아오는 밤 (1)」, 김유진

by 談담 2023. 2. 23.

  근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영천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서울이 빠르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이 동네는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택시를 타고 1시간은 족히 달려서 찾아온 적막한 동네는 내가 이곳을 떠났을 때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슈퍼가 편의점이 되고, 낡은 오락기가 인형뽑기 기계가 되는 수준의 변화만 엿보일 뿐이었다. 인터넷에 주소를 검색해봐도 마을회관 하나라도 나오면 다행인 곳에 내가 다시 발을 들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아서 해진이 여기까지 왔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내게 남은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드물게 외부인이 발을 들인 것이 신기해서인지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따금 나를 흘끔거렸다. 나는 도랑을 따라 길게 늘어진 하천 옆에 바짝 서서 영천산을 향해 걸어갔다. 하천의 끝은 보이지 않고 산에서부터 물이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 하천의 끝은 바다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지도 시간이 꽤 흘러 이제 와선 확신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집을 부풀리는 산은 그럼에도 여전히 보잘것없고 자그마해서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웠다. 그건 그저 주민들이 이따금 심심풀이로 오르는 조금 높은 산책로에 불과했다. 너무 작아 예전에는 이름도 없었다가,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지역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그대로 굳어져 영천산이 되었다.

  이 산은 원래는 우리 집안의 종산宗山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건 전통적인 종산의 모습을 아주 철저히 따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소리였다. 대대로 우리 집안 사람이 명을 다하면 영천산에 묻혔는데, 그 전통 아닌 전통은 나의 할아버지 대에서 끊겼다. 듣기로는 부족한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천산을 팔아치웠다고, 할아버지는 가끔은 덤덤하게, 그리고 자주 후회하듯이 그 말을 꺼냈다. 영천산은 산으로서의 위엄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그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해진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즈음에 되어서 결국은 정부의 손에 들어갔더랬다. 그 과정에서 등산로도 개척되어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었다. 듣기로는 비교적 최근인 3년 전 정도부터 영천산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하류에서 매년 연어의 치어를 방류한다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아직 그렇게 방류된 연어 중 돌아온 것은 한 마리도 없었더랬다. 원래 그곳은 연어들이 알을 낳는 장소였는데, 사실은 더 이상 영천산이 우리 집안의 소유가 아니게 된 이래로는 줄곧 그렇게 발길이 끊긴 채였다.

 

  영천으로 내려가 보기로 결정한 것은 해진을 실종신고 한 지 벌써 사흘이 다 되어가고 있었을 시점이었다. 실종자를 찾는 골든타임의 막바지였다. 해진은 성인이었으므로 실종신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아직도 그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경찰에서도 이렇다 할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병이 발병하기 전까지 해진이 근무했던 초등학교에 전화했을 때 3학년 부장이라던 교사는 의아하다는 듯이 퇴직한 교사가 이곳에 올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도리어 우리를 이상한 사람 대하듯이 되물었다. 나는 순간 밀려드는 모멸감에 아 그렇죠, 하는 흔한 추임새 하나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를 맞으며 코팅된 해진의 사진을 손에 쥐었다. 집에서 세 정류장은 떨어진 곳까지 나와 해진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해진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일 그러고 돌아다닌 탓에 지쳐갈 즈음, 남편으로부터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라는 거였다. 나는 얌전히 버스 정류장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는 물이 고여 내 엉덩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정류장에는 이제 나 혼자였다. 초록색의 마을버스 몇 대가 정류장에 가까워지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가, 내가 승차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속도를 높여 나를 지나쳐 갔다. 마침내 내 앞에 완전히 멈추어 선 것은 버스가 아니라 검은 소나타 한 대였다. 나는 그제야 빗물을 몸에 가득 머금은 양 흐물흐물하게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해진의 몫이었던 조수석에 오르자 남편이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조수석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뒷좌석으로 옮기는 게 보였다. 방금 뭘 한 거냐는 듯이 바라보자 그는 대답 대신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얼핏 보기에는 두툼한 종이 뭉치였다. 가장 위에 있는 것 하나를 가져와 양손으로 쥐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상단에 크고 두꺼운 글씨로 적힌 실종자를 찾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해진을 찾기 위한 실종 전단이었다. 막상 시각화된 정보로 확인하니 해진이 사라진 것이 거듭 강조되는 것만 같아서 어쩐지 물속에 들어간 듯이 숨이 막혔다.

지금 붙이면 비 때문에 다 찢어져. 휴가도 냈겠다, 내가 내일 돌릴 테니까 당신은 집에 있어. 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런 건 또 언제 만들었어. 나한테는 말도 않고…….”

  “당신이 미친 사람처럼 밖으로만 나도니까 내가 한 거 아냐? 그렇게 굴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한대? 사람 둘 잡겠구먼, 아주.”

  남편은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였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하지만 나는 전단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전단지의 좌측 절반에는 해진의 사진이 컬러로 크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익숙한 옷차림, 익숙한 자세였다. 이전 가족여행을 가서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을 때의 차림이었다. 그 사진에서 해진의 부분만 크게 잘려서 전단지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그 옆에는 해진의 증명사진도 붙어 있었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현실 감각이 아득하게 사라졌다. 나는 무심코 사진 속의 해진을 몇 번이고 쓰다듬어 보았다. 어쩌면 정작 해진은 자신이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건 고작 서른에 불과한 해진에게 닥친 불행이었다.

  사진의 옆으로는 남편이 적었을 해진의 인상착의가 투박하게 이어졌다. 무심코 해진의 이름, 마지막 목격 장소, 사례금 따위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아래에 굵게 강조된 문장 때문이었다.

 

  실종자를 발견하시면 즉시 위의 번호로 연락해 주세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제보만 해 주셔도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사례비 50만 원.

 

  50만 원, 유난히 강조된 글자가 마치 해진의 몸값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게 그 숫자를 따라 읊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행인 중에서 해진만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거주하는 아파트 근처의 서점 앞 CCTV에서 포착된 이후로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진 속의 해진은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나를 쏙 빼닮았다던 눈가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여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경찰에서도 계속 사람을 찾는다는 문자만 보낼 뿐 정작 아직 내게는 별다른 기별이 없었다. 해진이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은 지는 벌써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가벼운 증상의 발현부터 헤아리면 벌써 5년 정도는 투병 생활을 한 셈이었다. 해진의 퇴행은 평균적인 진행 속도와 비교하면 빠르지는 않았으나 나와 남편이 변화를 충분히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전단지 하나를 작게 접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둘 중 아무도 침묵을 깰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한 차 안에서 들리는 건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일했다. 해진은 우산 없이 바깥에 나가 빗물을 맞는 것을 즐길 정도로 유독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지만, 지금처럼 흔쾌히 그녀를 품어줄 지붕 하나 없는 상황에서까지 이 날씨를 즐길지는 의문이었다. 내가 창에 머리를 기대기 무섭게 신호등에 걸린 차가 천천히 멈추어 섰고, 그 앞을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앞다투어 지나갔다. 투명한 우산 너머로 피곤함에 젖은 얼굴이 일렁거렸다. 언젠가부터 해진은, 자신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인 줄로만 알았다. 분명 그녀도 저 무리 사이에 끼어들고 싶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 부부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해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원래부터 그다지 좋지 못했던 부부 관계는 그 결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 중 아무에게도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이 들으라는 듯이 푹푹 한숨을 내쉬는 것을 모른 척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피처로 삼은 핸드폰으로 고개를 처박자 한 시간 정도 전에 누군가 내게 보낸 카톡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권미리, 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내 주변인 중 이런 사람은 없었다. 프로필 사진은 신분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치즈 태비 고양이 사진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찍은 영상 편집본 보내드립니다. 다시 한번 인터뷰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아래에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하나 있었다. 이름 대신 마침표 하나에, 달리 단서가 될만한 건 없는 음식 사진을 내건 사람의 카톡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답이 도착하지 않아 불안했던 듯이 상대는 30분 전에 한 번 더 카톡을 보내온 듯했다.

  한해진 선생님 맞으시죠?

  나는 몇 년 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맞출 때 해진의 옛날 전화번호를 받아서 썼다. 새 번호를 다시 외우고 익숙해질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러니 내게 카톡으로이것도 물론 해진이 깔아준 거였다특히 병이 진행될수록 해진은 그런 일이 잦았다. 더군다나 나는 프로필 사진도 이름도 따로 설정해 두지 않아서 상대도 착각할 만했다. 그렇게 상대의 행동에 대한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잠시 그 카톡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미리가 보내온 것은 10분 정도의 단위로 편집된 인터뷰 영상 세 개였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미리가 누구였는지 희미하게 떠올랐다. 내가 아니라 해진의 손님이었던 데다가, 가끔 그녀를 부를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학생이라는 호칭이면 충분했으므로 이름까지 지금껏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게 내 나름의 합리적인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더군다나 미리가 인터뷰를 하러 왔던 건 해진이 아직 치매 초기이던 시점의 일이었으므로 잊을 만도 했다. 분명 그때 해진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여 출판된 자서전도 택배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시점에 미리가 다시 연락할 일이 무어가 있나 싶어 의문스러웠다.

  제가 작업했던 자서전이 이번에 공모전에 당선돼서 잡지에 실리게 됐는데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기념으로 그때 찍은 영상도 편집해서 보내드립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미리는 우리 지역에 위치한 보건소 슬하의 치매예방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학생 봉사자였다. 치매 환자 자서전 대필 프로그램이었는데, 대학생 중에서 약 열 명 정도를 선정해 치매 환자를 인터뷰하고 자서전을 대신 작성해 주는 일종의 재능기부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해진 역시 도움을 얻기 위해 이따금 치매예방센터를 다니며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때 담당자의 추천에 넘어가 참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해진의 병이 더 진행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찾다가 결정한 거였다. 그때 담당자는 보호자인 내게도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는 홀린 듯이 인터뷰 영상을 다운로드했다. 로딩을 표시하듯 작은 원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재생 버튼으로 바뀌었다. 그 버튼 너머에는 맞은편에 앉아 있을 미리를 바라보는 해진의 모습이 멈추어 있었다. 못 본 지 아직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진은 어째서인지 무척 앳되게 느껴졌다. 작은 귓구멍에 이어폰을 박아 넣고이 이어폰도 해진의 선물이었다뒤이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영상 속의 해진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나는 해진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짐짓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진은 좀체 자신을 과도하게 외부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말썽을 부리는 일도 적었고, 공부도 곧잘 했다. 퍽 드문 착한 딸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런 해진이었으므로, 그녀가 직접 인터뷰를 신청했다는 건 나로서는 충분히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해진의 목소리가 이윽고 귓가에 느리게 파고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될까?”

  “…… 어린 시절은 어때요? 원래도 서울에 사셨나요?”

  인터뷰는 미리의 어색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알츠하이머가 발병했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단번에 흐려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최근의 일들은 머릿속에서 점차 그 비중이 옅어지고, 환자는 대개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일이 잦아지고는 했다. 해진의 진단 이후로 나는 치매 환자 노인이 자신의 딸을 엄마라고 부르는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았다. 그나마 나는 해진이 몇 살이 어려지더라도 여전히 엄마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니, 영천에 살았어. 아마 어딘지 말해도 모를 거야. 재개발도 안 되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골인데, 공기 하나는 진짜 끝내주게 좋았지. 거기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다가 서울로 이사 왔어. 즐거웠는데.”

  “어쩌다가 이사를 오셨는데요?”

  “그건…….”

  해진은 쉬이 입을 떼지 못하고 말을 아꼈지만, 나는 그 망설임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해진의 입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이 오는 일은 없었다. 대강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얼버무린 해진은 이윽고 어린 시절 자신이 얼마나 재능 넘치는 아이였는지, 그리고 어릴 때 어떤 꿈을 꾸었으며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등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영양가는 많지 않았으나 이상적인 자서전에는 들어갈 법한 수준의 대화였다. 미리가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그에 이어지는 몇 가지 답변을 풍부하게 내놓았다. 이따금 이미 했던 이야기가 다시 해진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반복되는 경향성만 제외한다면 그녀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인터뷰이였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영상을 중단했다. 영상을 틀기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해진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왔다. 그녀는 침착했고, 상냥했으며, 사려 깊어 보였다.

  그렇게 내 첫 상영회는 허무하게 갈무리되었다.

 

  “뭐 해? 내려.”

  우리가 거주하는 아파트 전용 지하주차장에 남편이 주차를 마치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퍼뜩 고개를 드니 그는 이미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몸을 반쯤 걸친 채 날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허둥지둥 전단지를 품에 안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다가 쯧, 뭔가 마땅찮은 듯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모른 척 익숙하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적막한 집 안으로 들어가며 형광등을 켜자 순간 눈이 부시도록 빛이 쏟아졌다. 오늘은 종일 하늘이 어두컴컴했던 탓인지 밝은 빛에 익숙해지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해진의 실종 이래로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나돈 것도 한몫할 터였다. 무심코 익숙하면서도 낯선 집을 둘러보면, 곳곳에 생활감이 묻어나는 가구들이 즐비하지만 마치 이곳이 내 집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이 아파트는 남편의 명의로 되어있고, 곳곳에 제대로 정돈되지 않고 널브러진 전자기기나 낚싯대 등의 취미 용품 등도 전부 남편의 소유였으니까. 이곳에 온전한 나의 것이라고 할만한 건 몇 권의 책과 해진이 준 잡지 정도였다.

  내가 어색하게 집을 둘러보고 있으면 남편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가 재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그건 일종의 암묵적인 사인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그러나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을 때 그는 늘 소파 중앙을 차지해서 앉고는 했다. 분위기가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경찰은 뭐래?”

  수 초가 지난 후에 남편이 먼저 옆에 앉으라는 듯 소파를 두드리며 운을 떼었다. 나는 양발이 땅에 달라붙은 사람처럼 다가가지 않았다.

  “아직 이렇다 할 연락 없어. 어디서 봤다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무슨 의미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 찾을 수 있느냐고.”

  남편의 말투에는 명백하게 빈정거림과 질타가 섞여 있었다. 일을 나가는 남편을 대신해서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해진을 돌보는 데 할애했던 것은 맞으므로, 나로서는 그에 대항할 말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솔직히 네가 하는 게 뭐가 있어? 아픈 애 하나 제대로 못 돌봐서 이게 대체 무슨 사단이야?”

  점차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한 번 열린 그의 입은 다물릴 줄을 몰랐다. 그 말을 필두로 쏟아져 내리는 말들에는 하나같이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그는 해진이 다니던 병원, 그리고 경찰, 또다시 나를 대상으로 돌아오며 쉬지도 않고 욕을 해댔다. 그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무능함의 극치였다. 앉은 몸이 제 감정에 못 이겨 들썩거리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내내 나는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그의 아내가 아닌 부하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실제로도 남편은 나를 자신의 부하로 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저 입을 꿰매어 버리고 싶었고, 나는 대신 몇 없이 온전한 내 물건인 책그마저도 해진을 돌보기 위해 구매한 치매 환자 관련된 내용이었지만을 들어 남편의 쪽으로 내던졌다.

  “당신 미쳤어?” 남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애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거리야?”

  씩씩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소파 기둥을 한 번 강하게 걷어찼다. 발끝에서부터 고통이 올라왔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자존심 싸움이란 원래 그런 법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남보다 못했고, 또 아이보다도 유치했다.

  “내가 동네북이지, 아주? 이런다고 해진이가 돌아오기라도 한대? 아빠 노릇 못한 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해진을 찾는 실종 전단지를 사이에 두고 우리 사이에서는 쉬지 않고 고성이 오갔다. 우리는 서로를 상처입힐 말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그것들만 골라 입 바깥으로 꺼낼 줄 알았다. 남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와 대조적으로 내 안색은 하얗다 못해 파래서 되레 차분하게 느껴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남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소파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나는 무심코 볼썽사납도록 어깨와 목을 한껏 움츠렸다. 그러고는 남편이 무언가 이 싸움의 종식을 장식할 행동을 취하기를 기다렸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진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유의미한 표정 변화 없이 전단지를 챙겨 종이가방 안에 밀어 넣었고, 아까 벗어두었던 재킷을 어깨에 무심하게 걸쳤다.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그는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걸어갔고, 오래지 않아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 있었다. 차갑게 식었던 체온이 뒤늦게 천천히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내일 붙이겠다던 전단지를 저렇게 가득 챙겨 들고 집을 나갔다는 건 오늘은 집에 돌아올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있든 없든 내 일상에 달라진 바는 없었다. 남편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 두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몸을 일으켜 해진의 실종 이후로 한참을 내팽개쳐 두었던 집안일을 해치우다 보면 식탁 구석에 처박아 놓은 이혼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내 지장도 이미 전부 찍혀 있었지만 정작 구청에 제출되지는 못한 서류였다. 해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나면, 을 계속 도모하다 보니 지금까지 미루어진 일이었는데, 정작 마음을 먹고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해진이 치매 위험군에 들었다는 진단을 받은 거였다. 마치 이건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나만 남은 집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던진 물건들을 주워 제자리에 돌려놓고, 아침에 채 씻지 못하고 싱크대에 방치된 접시들을 식기세척기 안에 몰아넣었으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먼지들을 처리하기 위해 청소기를 돌렸다. 해진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그간 밀려두었던 일들을 해치우는 데는 새벽이 꼬박 소모되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은 내내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그쯤 나는 거의 탈진해 있었다. 해진을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던 사흘 동안 쉬었던 기억은 손에 꼽았다. 그렇다고 해진을 찾을 수 있을 만한 유의미한 단서를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먼지털이를 들고 이미 골백번은 더 뒤져 보았던 해진의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집이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기보다는 몸이라도 움직이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던 까닭이었다. 문고리를 돌리자 사람은 없지만 온기와 생활감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작은 방이 나를 반겼다. 고작 며칠 손을 뗐다고 엉망이 된 다른 방들과는 다르게 해진의 방만은 마지막으로 정리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자리한 채였다.

  책상 위에는 각종 책이 놓여 있었으며, 그녀의 성격을 쏙 빼닮아 깔끔하게 각이 잡혀 있는 책들 사이에는 해진의 손때가 잔뜩 탄 작은 수첩 하나가 끼어 있었다. 책들 사이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어서 저번에 들어왔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무릇 눈에 익은 공간일수록 사소한 부분은 놓치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무척 익숙한 수첩이었다. 아무리 핸드폰 메모지 기능이 있다지만 중요한 내용은 손으로 기록하는 걸 좋아하던 해진은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고 건망증이 심해질 즈음부터 자신의 일정을 수첩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소하게 자신의 가벼운 외출 일정부터, 자신이 중요하다 느끼는 것들까지 전부 정리되어 수첩에 적혔다. 해진은 어딜 가든 그 수첩을 품에서 떼어놓는 일이 없었다. 주인 없이 홀로 남겨진 수첩이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졌고, 어쩐지 해진답지 않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수첩을 걷어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수첩에는 정갈한 글씨로 해진의 일정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실종 직전까지의 일정이 빼곡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애초에 나는 해진이 혼자 외출하도록 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수첩을 뒤로 넘길수록 내가 모르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작게 표시된 메모들도 있어서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진은 이따금 혼자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왜 내가 늘 그녀의 곁에 따라다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적었다. 병이 진행되면서 해진은 자신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몇 번 정정하고 다그치기도 해 보았으나 한사코 부인하며 오히려 거부감만 심해지기에 나중에는 우리도 해진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수첩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어서, 나는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고 글씨를 알아보기 위해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보지 못할 낙서들 사이에 띄엄띄엄 적힌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깎아지르는 절벽, 계곡, 비석, 연어 떼

 

  수첩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해진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것들을 수첩에 적어두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동네에는 작은 산은 고사하고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도록 조성된 공원 정도밖에 없었으므로 절벽이나 계곡 같은 것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해진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무의미한 고뇌를 반복하다가 다시 수첩을 읽어보는데, 처음에는 미처 모르고 넘어갔던 글자들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수첩의 메모에서는 주기적으로 영천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었던 거였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꾹꾹 눌러 적힌 그 단어를 보면 일종의 강박이나 집착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영천산 주변 주소가 적힌 글씨 아래에는 영천산의 약도가 간단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지금이 아닌, 20년 전 영천산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었다. 해진은 산에 들어가 노는 걸 무척 좋아했으니 길을 외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약도의 끝에는 어떤 지역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 마치 보물 지도에 그려지는 것들을 연상케 하는 표식이었다.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한데 뒤엉켜 있으니 내용이 해석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그와 별개로 분명 여기에 해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남편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기 역시 잠잠했다. 전단지를 붙이러 나간 거라면 제보 전화라도 몇 통 와주었으면 하는 게 지금 심정이었는데, 그 흔한 스팸이나 장난 전화조차도 없었다. 나는 해진의 수첩을 외투 주머니에 깊이 쑤셔 담고 충동적으로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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