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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돌아오는 밤」

「돌아오는 밤 (3)」, 김유진

by 談담 2023. 2. 23.

  할아버지는 영천산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

  영천산은 작고 낮아 볼품없었지만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전쟁이 났을 때 온 가족을 데리고 영천산에 숨었다고 말했다. 당신이 징병이 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조상께 거듭 사과하며 무덤 근처에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몸을 숨겼더랬다. 전염병이 돌아 자식 하나가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랬고, 내 아버지가 서울로 상경하겠노라 읊었을 때도 그랬다. 할아버지에게 영천산은 종산 이전에 도피처였다. 그는 자신을 조상들이 지켜주는 게 분명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인지, 영천산을 팔아버리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는 했다. 그러고는 부모자식 간의 의를 끊겠다, 으름장을 놓았던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내가 다섯 살이었고,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 중 가장 처음으로, 영천산에 묻히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서 살며 급속히 쇠약해졌다. 뉴스에서 조금만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사색이 되어 어디에든 몸을 숨기려 했다. 늘 담요로 몸을 두르고 다녔으며 툭하면 아버지와 갈등을 빚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방 안에서 영면에 들었다. 명을 다하기 전 그는 갈망하듯이 영천의 이름을 되내었다. 돌아가야 한다고, 자신을 숨겨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그 모습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결혼하고 영천산으로 되돌아갔다. 그때는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해가 채 뜨기도 전, 새벽 5시 즈음에 자연히 눈이 떠졌다. 나이가 들어 아침잠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단순히 긴장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준비를 하다 보면 날은 금방 밝을 터였다. 나는 딱딱한 매트리스를 뒤로 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남편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해진은 계획대로라면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기로 되어있었다. 이미 적당히 입원하기 좋은 날짜도 잡아 두었었고, 시설을 보기 위해서 여러 번 혼자 병원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곳에 들를 때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풍경들은 가히 고통스러웠다. 굳이 병실 가까이 찾아가거나, 의식적으로 눈을 굴리지 않아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나보다도 몇십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모가 자식, 손자들을 붙잡고 생떼를 부리거나, 잠시 근처 산책로에서 산책을 하다가 그대로 휠체어에 탄 채 배변하는 광경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에 연결된 오줌주머니가 찰랑거리는 게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어디에도 안심하고 눈 둘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진이 실종되기 일주일 전에도 나는 병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기약 없이 그녀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행여 해진을 내 손으로 버리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이유 없이도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고는 했다. 누군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함이었고, 최종적으로 입원을 결정하기 전까지 해진을 입원시키길 반대하는 남편과 끊임없이 부딪혀 왔으므로 더 그랬다. 당사자인 해진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었다.

  “언니 안녕?”

  어딘가에서 늙고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이 시간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족들과 함께 볕을 쬐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휠체어를 끄는 아들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고,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해맑게 웃으면서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잘 됐다, 나 아이스크림 좀 사 줘. 아빠가 안 사준대.”

  “아유, 어머니 또 이러시네. 죄송합니다.”

  “왜 죄송해? 사 달라니까.”

  노인의 목소리에 불만이 섞였다. 조금만 더 비위를 거스르면 당장이라도 머리채를 붙잡고 자기 자식을 뒤흔들 기색이었다. 분명 아들은 몇 번 더 노인을 어르고 달래다가, 이내 체념하고 편의점에서 그녀를 위해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올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은 분명 다음에도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또다시 그를 괴롭히겠지. 직접 보지 않아도 그 모든 광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즈음 해진도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곁에서 돌본다는 것은 환자가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을 직접 지켜보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이따금 해진이 나더러 왜 이렇게 나이가 들었느냐며 해사한 표정으로 물어볼 때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해진을 바로 옆에 두고서도 그녀가 그리웠고, 해진을 위해 미리가 적어준 자서전은 언제부턴가 손도 대지 않는 해진을 대신해서 내가 곁에 두고 펼쳐보게 되었다.

  해진을 입원시키기 위해 다시 병원에 찾아가기로 한 날은 평일 오후 2시 정도였다. 사람이 덜 몰릴 만한 시간을 잡은 거였다. 남편 역시 직장에 출근해 있을 시간이었으므로 해진과 함께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주말에도 한산하던 정류장에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고, 해진은 오랜만의 외출이었기 때문인지 유난히 비협조적이었다. 나 역시도 해진의 입원 문제로 그간 골머리를 앓아 피로가 쌓여 있었으므로 해진을 섬세하게 살필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줄을 서서 뜨거운 햇빛을 피하고자 눈을 감고 선 채 꾸벅, 잠시 졸았던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퍼뜩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니 해진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준비를 마치고 여인숙을 나오면 여전히 어두운 하늘 사이로 조금씩 해가 떠오를 듯한 조짐이 보였다. 영천은 전체적으로 서울에 비해 느긋했다. 지역의 발전은 비교할 것도 없었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하루의 시작도 그랬다. 하나뿐인 인문계 고등학교의 정문 앞에는 아직도 3년 전 학생 한 명이 지역구 수영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내용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직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나 외에는 없었다. 시골의 아침은 빠르다더니, 그런 통념에서도 영천은 어딘가 비켜서 있었다.

  영천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에는 없었던 작은 관리실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안이 훤히 내다보이는 유리막에는 촘촘히 작고 좁은 구멍들이 여러 개 나 있었다. 그 너머에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관리 직원이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잠들어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했다. 옆에 붙은 안내 문구를 읽으니 영천 주민은 무료로, 외지인은 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분명히 내 핏줄은 영천과 이어져 있었지만, 주민등록증에는 전혀 다른 곳의 주소가 찍혀 있었으므로 나는 구겨진 지폐 한 장을 꺼내 구멍 너머로 내밀었다. 그는 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고개를 한 번 까딱, 할 뿐이었다. 나는 어느새 익숙하게 관리실 건물에 전단지를 붙여도 되느냐고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에 그는 한 번 내놓아 보라는 듯이 유리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마치 검열당하는 창작자의 입장이 된 것처럼 쭈뼛쭈뼛 전단지를 내밀었다.

  “이거 해진이 아녀?”

  “?”

  순간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사람들에게는 일체 관심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 남자가 해진을 알고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해진은 역시 이곳에 있나?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채근하듯 얼굴을 가까이 했다가, 이내 유리에 이마를 쿵 부딪히고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남자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댁 딸내미여? 자주 왔어. 와서 종일 산에 있다가 갔지. 거 참, 이 작은 동네 뒷산에서 뭔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요 몇 년 동안은 못 보긴 했는디.”

  “그러니까, 해진이가 여기 자주 왔었다고요?”

  “그렇다니까.”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해진은 우리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병이 발병하기 전까지는 직장을 구해 따로 살았던 그녀였지만, 해진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는 하는 게 일상이었다. 정말 사소하다 싶은 것까지 빼놓는 법이 없어서 나는 해진이 곁에 있지 않아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줄줄 꿸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부턴가 해진이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한 듯하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 빠르게 검진을 받아봤던 것 또한 그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제까지 우리 몰래 영천에 드나들었다니, 나는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한 거짓말을 깨달았을 때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는 우리가 도통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영천에 몰래 갈 길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이곳에 해진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찾으면 나도 좀 알려주소.”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까딱, 하고는 영천산 안으로 느리게 발을 내디뎠다.

  등산객들을 위해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가다 보면 머지않아 영천산의 코스를 표시해 두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코스라고 해 봤자 곧장 봉우리로 향하는 직선 코스와, 주변을 빙 둘러 천천히 올라가는 둘레 코스 두 가지가 있을 뿐이었다. 영천산은 무척 작아 1시간이면 정상을 찍고 내려올 수 있었고, 아무리 천천히 정경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2시간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은 영천산을 조금 더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둘레 코스를 따라 등산하기로 결정했는데, 혹시 놓치는 게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산은 직선 코스로 할 계획이었다.

  둘레 코스는 산을 오른다기보다는 평지를 산책하는 느낌에 더 가까워서 주변을 돌아보기도 쉬웠다. 다행히 전파도 무리 없이 잡혀 나는 혹시 실종 전화가 걸려 올 것을 대비해 휴대전화의 볼륨을 최대로 키우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산을 빙빙 돌아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만 할 뿐이었다. 수첩을 뒤집기도 하고, 접어보기도 하며 확인해도 붉은 표시가 되어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늦어도 2시간이면 산을 전부 살피고도 남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어느새 그 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나는 얼음물을 허벅지에 대고 굴리며 잠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금 수첩을 노려보았다. 해진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단어들을 수첩에 적어 두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산을 이 잡듯이 뒤지는 동안 해진이 적은 자연물들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 이상했다.

  처음 해진을 잃어버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서 영천산을 돌아다닐 때도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물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다지 큰 소리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것은 아직도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내 양발은 그때는 없던 멀끔한 등산로 위를 밟고 서 있었다. 비가 온 뒤라 질척하고 더러워졌던 슬리퍼 대신 멀끔한 등산화가 눈에 보였다. 이대로는 분명 의미 없는 걸음만 되풀이할 터였다.

  산은 그때와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지만, 동시에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시야를 낮게 조절하니 분명히 같은 공간인데도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남이 본다면 퍽 이상하게 여겨질 게 분명했지만, 다행히 영천산에 나를 제외한 기척은 없는 듯했다나무와 풀을 헤치고 약도를 따라 이미 수도 없이 헤쳤던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풀들은 이미 내 경로를 따라 비켜서듯 양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눈앞의 풍경이 이전과는 미미하게 달라져 있음을 눈치챘다.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맴돌았으니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의 변화였다. 그건 내가 드디어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기뻐할 틈도 없이 그 길을 따라 기듯이 걸어가면, 오래지 않아서 어린아이 한 명 정도 높이의 턱이 나타났다. 더불어서 근처에서 미미하게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필시 이 턱이 수첩에 적혀 있던 깎아지르는 절벽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이 정도의 높이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올 만했고, 당시 온몸이 엉망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혹은 실수로 굴러떨어졌다고 보는 편이 합당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듯이 턱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중간중간 나뭇가지에 피부가 쓸려 따가웠다.

  거기까지 가고 나니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낮은 산이라고 등산 준비 없이 몸만 온 탓에 목이 바싹 말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영천산을 헤맨 것은 해진과 해유를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던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서 아직 내 발자국이 남은 턱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잠금을 풀자 자연스럽게 일시 정지되었던 영상이 재생되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해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마치 라디오처럼 영상을 틀고 시선은 꼿꼿이 전방을 주시했다. 고작 며칠 동안 듣지 못했다고 그새 앳되게 느껴지는 해진의 목소리가 내 귓속에서 진동했다.

  “치매 위험군에 든 이후부터는 일부러라도 수첩에 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했는데, 생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 오히려 수첩도 잊어버리고 나가버리는 날이 많아서 하루하루가 고역이더라.”

  “정말 힘드셨겠어요.”

  “진짜로 그랬지.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내가 왜 여기 있었지? 하는 거야. 그건 느껴보면 솔직히 꽤 무서워.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외출할 일을 안 만들게 됐지. 매일 엄마한테 같이 가자고 말하기도 솔직히 미안하잖아.”

  거기까지 해진이 내게 직접 말한 적은 없었으나, 나도 내심 느끼고는 있던 부분이었다. 자취방의 짐을 모두 우리 집으로 옮긴 날부터 가족 사이에는 언제나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남편은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유난히 해진을 불편하게 대하는 게 몸소 느껴졌고, 나 역시 그녀를 대하는 데 평소와 같을 수는 없었다. 해진 역시도 이따금 전에 없이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것이 기억났다. 그 모습은 마치 영천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난 직후에 잠시 해진을 내 친정에 맡겼을 때를 연상케 했다. 간단하게 자신의 힘듦을 토로한 이후 해진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습관이나 어릴 적 좋아했던 것 등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해진의 어린 시절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해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탓이었다. 이를테면 해진이 자신이 어릴 때는 수영을 좋아했노라 말할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랬어? 하고 되물어보게 되는 식이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건 해진이었는데, 정작 시간이 지날수록 해진을 모르게 되어가는 건 나였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니 뒤늦게 이전과는 다른 지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해진이 절벽이라고 표현한 둔덕실질적으로는 조금 높은 언덕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아래로 내려오니 물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래로 내려가기 무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꽤 거대한 크기의 매끈한 바위였다. 상단이 깔끔하게 파여있어 위에 올라가 앉기도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당시 해진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이 바위 위에 누워 쉬거나, 개울로 뛰어들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도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예상대로 마을 하류와 이어지는 개울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근처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추락 주의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글자가 차례대로 적힌 채였다. 이전에도 이런 게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내려다본 개울가는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보잘것 없어 보였다. 무엇이 아이들을 홀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놀기 위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나, 어째서 산을 올랐던 아이들 중에서도 하필 해진이어야만 했는지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천천히, 20년 전 아이들이 그랬을 것처럼 물줄기를 따라서 더 깊이, 상류를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볕이 잘 들지 않는 구석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허리를 숙여 손을 그쪽으로 뻗었다. 거친 표면이 손끝에 닿았다.

  그것을 손에 쥐어 끄집어내니 그제야 그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미 색이 바래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는 알아보기 힘들었고, 깔창은 전부 뜯어져 나갔지만 그건 분명히 신발이었다. 거기 오랫동안 있었는지 상태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순간 해진의 신발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 신발은 겨우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에 불과했다.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성인이 신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요즘은 보이지 않는 시장 짝퉁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샛노란 운동화였다.

  신발은 다소 인위적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 쉬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겨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손으로 계속 쓸어 넘기다 보면, 오래전에 붙여 이제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는 흔적만 남은 듯이 접착제가 남아 끈적한 부분이 손에 걸렸다. 신발에 스티커를 붙이는 건 역시 어린아이나 할 법한 일이었고, 나는 뒤늦게 이 신발의 주인이 정말로 해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그녀가 찾으러 온 것이 이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짐작을 속에 품었다.

  등 뒤로 인기척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파도가 치는 듯이 물살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나는 듯한 소리였다. 무심코 인기척의 주인이 해진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나는 순간 얼굴이 밝아져 뒤를 돌아보았다.

  정체 모를 물고기 떼가 개울을 타고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개울에 다가갔다. 반투명한 물 너머로 보이는 물고기 떼는 그 모습이 온전한 것도, 반쯤 썩어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싶은 것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다가, 이끼가 잔뜩 껴서 미끄러운 돌 위에서 그만 넘어질 뻔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3년 전 영천산에서 방류했다던 연어의 치어들이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비현실적이었다. 분명히 나의 두 눈앞에 실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연어들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대열을 이끌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어쩌면 해진도, 이걸 보기 위해서 여기로 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진아!”

  물소리에 반쯤 가려진 목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꺼지지 않은 휴대전화에서 해진의 목소리가 계속 반복적으로 흘러나왔지만, 내가 원하는 건 녹음된 해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서히 연어 떼가 끝을 보이고, 마치 용의 꼬리를 찾듯이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천천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끝에 가닿을 것 같으면서도 가닿지 않는 곳, 내 몸을 간신히 지탱하는 두 다리가 자갈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목이 터지도록 해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이 좁은 영천 안에서 더 비좁은 산 안에만 빙빙 맴도는 나의 목소리밖에 없었다.

 

  작은 마을이기에 몇 다리만 건너면 전부 두루두루 아는 사이라는 것은 그만큼 소문이 빨리 퍼져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해진이 실종되었던 이후로 아이와 함께 영천산에 놀러 갔던 다른 아이들의 부모는 슬슬 우리 가족을 피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은 전염병처럼 마을 사람들 대부분에게로 번져갔다. 산에 대한 기괴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따지고 화내고 싶은 건 되레 이쪽이었지만 그때는 그럴 겨를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이 이상 바닥으로 추락하지는 못하겠다 싶을 수준으로 지쳐 있던 까닭이었다.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 해진은 한동안 학교가 끝나면 학원 대신 상담센터를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롯이 자의만으로 무언가 선택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영천 사람이었고, 그곳에 완벽한 남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내가 무언가 하나를 시도하면 그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 마디씩 보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선택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조종하기 쉬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기질 탓에 서울에서도 나는 한참을 적응하지 못하고 헤맸다. 영천에서 소문에 시달리던 내게 서울로 상경하자고 제안한 건 결혼하고 나 때문에 영천에 내려와 살던 남편이었다. 영천의 몇십 배는 되는 규모에, 어딜 가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도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길을 지나가다 자칫 서로의 몸이 스쳐도 고개 한 번 까딱, 숙이면 양반이다 싶을 정도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누가 봐도 시골 출신의 어리바리한 촌뜨기였다. 내 선택에 트집을 잡는 이는 없었지만,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때는 그 탓인지 서울은 무척 삭막하고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오고 나서 한동안은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해진을 돌보는 데만 내 시간을 전부 쏟았다. 혹여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나 후유증이 생겨 앞으로의 삶에 지장이 갈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 해진이 멍하니 앉아 연어의 생태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에 푹 빠져 있을 때면 괜히 화를 내며 그녀에게서 리모컨을 빼앗았다. 서울의 공기에 적응하지 못한 내게 대신 영천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온라인 공간이었다. 내 기준으로 혼자 결정을 내리기에 무겁다는 판단이 서는 사안이 있다면 인터넷에 업로드해 누군가 의견을 나누어 주기를 기다렸다. 심리상담센터에 등록하게 된 경위도 비슷했다. 그들은 오히려 왜 이제까지 집안에서 딸아이를 방치해 두었느냐며 앞다투어 호들갑을 떨었지만, 절제되고 간결한 문장만큼은 내게 신뢰감을 줬다. 나는 그런 식으로 서울 안에서 나만의 영천을 구축해 나아가고 있었다.

  영천산은 단순한 종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전쟁이 났을 때 영천산에 판 구덩이에 마을 사람들을 숨겨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줄곧 꺼내고는 했다. 조상이 당신을 지켜주는 게 분명하다던 할아버지는 영천산을 팔아넘기면서는 조상은 이런 일로 화를 낼 만큼 쩨쩨한 성정이 아닐 거라며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 아래로 굽혔다.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도망치듯 영천을 떠나는 우리 가족에게는 별의별 소문이 따라붙었다. 그렇지만 그날 이후에도 나는 지금의 해진처럼,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종종 영천산을 찾았다. 그곳에는 내 부모의 무덤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 때 버스와 났던 교통사고가 원인이었다. 그 탓에 나는 뒷좌석에 앉는 것이 무서워졌고,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매번 영천까지 방문해야 하는 수고를 들이기가 버거워 걸음은 해진이 자라면서는 서서히 줄어들다가 끊겼고, 아마 이제는 잡초에 뒤덮여 어떤 게 조상의 무덤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연어가 불쌍해.”

  해진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아니,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해진의 입에서 그때의 일이 더는 오르내리지 않게 될 즈음에서야 상담센터를 향한 발길도 완전히 끊어졌다. 하지만 해진이 완전히 나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천에서의 일이 그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은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냉장고 한쪽에는 온갖 비타민제가 그득하게 들어섰고, 원래 쓴 커피를 즐겨 마시던 나는 언젠가부터 속이 쓰려서 커피에 우유를 타지 않고는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밤의 장막이 드리우듯이 느리게 찾아들었다. 해진의 잃어버린 신발 한쪽과 함께, 마치 영천에 무언가를 두고 온 듯이 어딘가 공허한 채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인터뷰 영상 속의 해진은 그렇기에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그녀는 자신이 숨겨두었던 모든 것을 미리 앞에서 토로하고자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럴 터였다. 항상 해진의 곁에 있던 나마저도 모르는 면모가 영상을 볼 때마다 새로이 눈에 띄었다.

 

  “아니, 세상에!”

  어딘가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인숙 카운터를 보던 주인 여자가 옆구리에 소쿠리 하나를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두껍고 촌스러운 장화를 신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소쿠리 안에는 고사리가 반쯤 채워져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에 나도 한동안 애꿎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기색만 내보일 뿐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하긴, 온몸이 흙투성이이고 나뭇가지에 걸려 생채기가 난 부위도 있었을 터니 남들이 보기에는 등산하다가 넘어져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일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본 여자의 표정은 그렇다기에는 좀 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내 여자는 기겁하듯이 대뜸 나를 삿대질하듯 가리켰다.

  “미친 거 아니야. 언니 지금 거기서 뭐 해?”

  그러더니 소쿠리를 옆에 내려둔 뒤 내가 내려와 있는 개울가까지 기어코 따라 내려와 나를 잡아끄는 것이었다. 그때 내 발 중 한쪽은 거의 물에 맞닿아 있었으니 여자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내가 봤던 그 기상천외한 광경은 그 짧은 사이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나는 여자를 원망하지도, 그렇다고 그녀에게 고마워하지도 못한 채 굳어 멀뚱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사고 났던 거 몰라? 이 언니 안 되겠네.”

  여자는 대뜸 나를 등에 업었지만 키가 작아 발끝은 땅에 질질 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입으로는 쉬지 않고 구시렁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나를 언덕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짧은 사이에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땀에 옷이 달라붙어 있었다.

  “앰뷸런스 불러 줘, ? 왜 이래?”

  “…….”

  “말 좀 해 보라고. 왜 이러냐니까?”

  “…….”

  “가족한테 전화해 줘? 어디 살아?”

  여자는 쉬지도 않고 말을 붙였지만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던 여자가 왜 여기서 나를 붙들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넋을 놓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자 여자는 진이 빠진 듯 멋대로 내 손목을 붙잡고, 그 와중에도 반대쪽 옆구리에는 소쿠리를 단단히 낀 채 영천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몸이 움직일 때마다 이명처럼 맴도는 물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다가, 끝내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산 입구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여자는 멋대로 나의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 핸드폰에는 여전히 해진의 인터뷰 영상이 정지된 채로 켜져 있었다. 여자는 스마트폰이 익숙지 않은 듯 인상을 쓰며 액정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 마을 사람들이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이 우리 주변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고, 그 모호한 경계가 오히려 내 신경을 더 곤두서게 만들었다.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그들을 향해서 두어 마디 보탰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무언가를 하는 듯싶다가 잠시 여인숙에 되돌아갔는데, 나는 제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알아서 하라는 뜻인 줄 알았으나 금세 다시 내게로 와서 종이컵을 하나 내밀었다. 안에는 믹스 커피가 들어 있었다. 듣기로는 여자는 외지인이라고 했다. 얼마 전 도시의 짐을 모두 청산하고 영천으로 내려왔다는 거였다. 하지만 역시 있는 게 너무 없다며, 다시 올라갈지 고민 중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왠지 모르게 내내 긴장해 있던 어깨를 살짝 늘어뜨릴 수 있었다. 여자는 혼자 쉬지도 않고 떠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나를 붙잡고 여인숙에 데려갔다. 그러고는 내 남편이 여인숙 안으로 들이닥칠 때까지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이따금 곁눈질로 나를 힐끔거렸다.

  “…….”

  남편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분명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남편의 몰골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루라도 거르면 덥수룩하게 올라오는 수염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지저분했고, 옷은 집을 나갔던 그때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아득히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다시 마주한 남편을 바라보니 의외로 별다른 느낌 없이 내 감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은 차를 끌고 온 모양이었다. 여인숙 옆 골목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엔진이 켜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등받이게 가만히 머리를 받쳐 두었다. 먼저 정적을 깨트린 것은 남편 쪽이었다.

  “당신, 도대체 여긴 왜 왔어?”

  “…….”

  “애가 여기 오기라도 했대? 꼴은 또 왜 그렇고.”

  말투에는 약간의 날이 서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입에 가시가 돋친 듯이 참았던 말을 토해내듯이 터뜨렸다.

  “돌아가야 해.”

  “?”

  “돌아가야 한다고.”

  전방을 주시하던 남편의 시선이 온전히 내 쪽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반쯤 정신을 놓은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소한 그 순간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두서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고자 하는 말은 단 한 가지였다. 다시 영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해진은 분명 그곳으로 되돌아올 거라고. 내가 그 산에서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아느냐고. 남편은 역시나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이전처럼 윽박지르지는 않았다. 해진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무언가 거대한 게 사라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도통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한참 도돌이표처럼 그 말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에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차 안에는 비로소 다시금 정적이 찾아들었다.

  나는 뒤늦게 각목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그건 마치 이제 막 겨울잠을 끝내고 어슬렁거리며 굴 안에서 나오는 곰 같기도 했다. 남편이 운전하는 내내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꺾이듯이 고개를 툭 아래로 떨구었다. 무릎을 덮은 바지에 점점이 작고 어두운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서울의 우리 아파트로 되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결국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전처럼 불안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를 일이었다.

  내 손에는 여전히 해진의 수첩이 놓칠세라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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