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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돌아오는 밤」

「돌아오는 밤 (2)」, 김유진

by 談담 2023. 2. 23.

  영천의 우리가 살던 곳까지 오기 위해서는 고속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도 버스를 두 번 더 갈아타야 했다. 서울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던 대형마트 하나 없는 영천에 하룻밤 묵을 호텔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낡은 건물 몇 개를 헐고 새로 주택을 올린 게 눈에 보이는 변화의 전부였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이들은 내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한 대로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여인숙 이름을 따라 홀린 듯이 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산을 올라 해진을 찾아볼 계획이었다. 산에서 해진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딱 지금과 비슷한 시간이었다. 당장이라도 해진을 찾아 산을 이 잡듯 뒤지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도무지 다리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등산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마을 곳곳에 실종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었다. 분명 해진이 영천에 왔다면 눈에 띄었을 확률이 높았다.

영천은 무척 좁고 이웃끼리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만큼 완전한 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소문은 순식간에 영천 전체로 퍼져나갔고 우스갯소리로 몇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영천의 협소함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따지자면 지긋지긋해 하는 쪽에 가까웠다면 가까웠다, 지금에 와서는 거기에라도 기댈 수밖에는 없었다.

  여인숙에 들어가면 카운터에 앉아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야구 경기를 보던 중년 여자가 고개만 대충 까딱, 숙여서 내게 인사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 있었고 하나로 질끈 올려 묶은 머리카락은 사방에 잔머리가 튀어나와 볼썽사나웠다.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흰머리는 그녀의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했다. 내가 카운터에 가까이 다가가 1일 숙박이요, 말하기 무섭게 여자는 말없이 13이라는 번호가 적힌 열쇠를 내밀며 가격표를 툭툭 두드렸다. 나도 덩달아 입을 다물고 카드를 내밀었다. 야구 경기를 시청하며 손만 내밀어 카드를 받으려던 여자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현금 없어? 카드는 수수료 10% 추가.”

  “상관없어요.”

  영천은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손해 본다는 느낌이 막심했지만 지금은 지갑을 뒤적거리며 카운터 앞에 서 지폐를 셈할 기력이라곤 일말도 없었다.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대꾸하자 여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든 채 나를 바라보다가 카드를 낚아채 긁었다. 나는 여자가 계산을 끝마치기를 기다리다가 잽싸게 전단지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 사람 본 적 없어요?”

  “누구? 몰라, .”

  여자는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충 대답했다.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을 터였으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제대로 보세요.”

  “아니, 언니. 사람 귀찮게 왜 이래?”

  “한 번만요. 제 딸인데…….”

  여자와 비슷한 반응을 한두 번 경험한 건 아니었다. 특히 해진이 실종되기 이전에는 주변인들에게 해진의 병이나 증상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하고픈 마음도 들지 않아서 언제부턴가 나는 다 자란 딸을 과보호하는 어미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늘 주변에서 착하다는 칭찬을 듣고 온순하던 해진은 언제부턴가 짜증이 늘었고, 그녀의 방에 있는 물건의 위치를 조금만 바꾸어 놓아도 발작하듯이 화를 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들에 집착하거나, 나나 남편의 얼굴을 잊은 듯이 한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병이 진행되면서는 이따금 옷을 입은 채로 오줌을 누기도 해서 성인용 기저귀를 사 온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기저귀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을 때는 혹시 누가 이상하게 볼까 싶어 마트를 빠져나올 때까지 부산스레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우리는 제풀에 지쳐 해진을 맡아줄 요양병원을 찾고 있었는데, 입원을 앞두고 해진이 사라진 거였다.

  몇 번이고 여자를 붙잡고 귀찮게 군 끝에 목격 제보 대신 여인숙 현관문에 전단지를 붙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데는 성공했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보기 쉬울 눈높이에 맞춰 전단지를 붙이는 동안 여자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문득문득 그 시선과 마주할 때마다 어쩐지 내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오히려 차라리 저런 식으로 대놓고 불만을 표해 주니 속내를 짐작할 고생은 덜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여자에게 키를 받고 올라온 방은 어두컴컴했고 이따금 곰팡내가 진동했다. 작은 싱글 침대와 테이블 하나로 겨우 구색만 맞춰진 방이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 탓인지 분명 혼자 있는데도 혼자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게 조금은 위안이었다. 나는 거의 있지도 않은 짐을 구석에 집어 던지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딱딱한 매트리스가 반동하듯 내 몸을 살짝 위로 튕겼다. 나는 그렇게 뭍으로 건져 올려진 물고기처럼 매트리스 위를 몇 번 펄떡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기이한 그 행위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내 의식을 현실로 잡아끌어 올 때까지 이어졌다.

  분명히 남편일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액정에 찍혀 있는 것은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혹시 전단지를 보고 목격자가 연락한 건가, 싶은 마음에 허둥지둥 전화를 받으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귀에 파고들어 왔다. 하지만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미리의 목소리였다.

  “연락 괜찮으세요? 답장이 없으셔서요.”

  잔뜩 조심하는 기색으로 미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영상을 받았을 때는 겨를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보내지도 못했던가. 나는 잠시 말을 고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핸드폰 너머로 미리가 선생님, 하며 한 번 더 내가 아닌 해진을 불렀다.

  “, 미안해요. 그런데 해진이가 번호를 잘못 알려줬나 보네…….”

  “잘못이요?”

  이번에는 당황한 건지 고민하는 건지 그녀 쪽에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미리는 뭔가 깨달은 듯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그럼 할머니세요?”

  당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서는 미미한 활기가 묻어났다.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이전에 내가 직접 그렇게 부르라고 말해주기는 했지만미리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했으므로 어쩐지 어색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크게 당황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오히려 반가워하는 느낌이 강해서, 침대 위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있는 내 상황과는 퍽 대조적이었다. 그녀가 벅찬 듯이 말을 이었다. 문자로는 무미건조하게 할 말만 이어가던 미리였기 때문인지 목소리를 들으니 감정을 읽기는 쉬웠다.

  “해진 선생님은 옆에 안 계세요?”

  “, …… 자고 있네.”

  “죄송해요, 너무 늦게 연락드렸죠. 그럼 나중에 이야기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특집 기사를 내고 싶으시다는 기사님이 연락을 주셔서요.”

  “특집 기사?”

  “, 좋은 기회잖아요!”

  미리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번에 공모전에 당선된 미리의 자서전이 잡지에 수록되면서, 해진에 관한 기사를 함께 기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이 온 거였다. 근래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해진은 특히 노인이 아닌 청년층에 속하는 만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라던 기자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미리의 목소리를 나는 한참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구독자 수도 꽤 많고 인지도도 있는 잡지라서 해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미리는 자기 일처럼 나를 설득하려 굴었다. 지금 해진은 내 곁에서 사라져 있었고, 설령 그녀가 실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들의 앞에 앉아 정상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을 리는 만무했다. 미리가 기억하는 총명하고 활달하며, 상냥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던 해진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인터뷰…….”

  “?”

  나는 순간 입을 다물고 망설였다. 이게 옳은 선택인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혀는 이미 나의 관할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대신 하면 안 되겠니?”

 

  스스로 가위로 난도질해 놓았던 하얀 티셔츠를 입은 해진이 나른하게 허공을 보며 하품했다.

  “연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익숙한 가죽 소파에 앉은 해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었다. 카메라의 시야 밖에서 누군가가 연신 덜그럭거리며 높낮이를 맞추는 도중에도 해진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연어들은 알을 낳으러 상류로 올라가는 동안 산 채로 썩는대. 그러다가 곰한테 잡아먹히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부패하는 고통은 느끼지 못한다더라. 그럼 과연 자기가 잡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까? 난 그게 궁금해.”

  해진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울렸다. 카메라 안으로 근처 대학교의 로고가 크게 박힌 야구잠바를 입은 미리가 나타났다. 미리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해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볼펜 한 자루와 수첩이 들려 있었다. 미리는 한참 수첩을 들춰보면서 빼곡한 글씨를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연어를 좋아하세요?”

  연어, 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나는 문득 화면 안의 미리가 부러워졌다. 내가 모르는 해진의 일면을 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싶었다. 내가 상념에 빠질 틈도 주지 않고 해진은 말을 이어갔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기억해. 기억하고, 되돌아와. 그게 자기 무덤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동시에 해진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녀가 미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껏 내가 보지 못했던 그런 종류였다.

  “나도 그래. 기억하고 싶어서 너를 불렀어.”

  영상을 보면 볼수록 오히려 해진과는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전 남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그게 단순히 내 착각은 아니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해진은 영천에서 태어났다. 내가 묵는 여인숙보다도 더 골목 안으로 들어서야 겨우 보이는 주택가에 있는 게 우리 가족의 집이었다. 한 학년이 서울의 한 반 수준인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런 작은 동네인 만큼 해진 또래의 아이들도 다 두루두루 아는 얼굴이었다. 생판 남으로 보이는 사이더라도 몇 다리만 건너면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다들 바깥으로 나가는 추세에 몇 안 되는 외지인인 남편은 오히려 더 눈에 띄어서 우리 가족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영천의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특히 우리 고향에 있는 산에는 개울가가 있었는데…….”

  나는 영천산에 관해 구태여 무언가를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으므로 어린 해진에게 영천산은 그저 지루한 시골의 유일한 유흥거리였다. 해진이 타인의 이야기를 나누듯이 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 역시도 기억하고 있었다. 종종 바람을 쐬기 위해 산책을 다니기도 했고,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종일 몸을 담그고 있다가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느릿느릿 산을 내려왔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해진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데려와 같이 놀 때도 많았다. 딱 오늘과 비슷하던 시기에 그 산에서 해진이 실종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올라간 아이는 네 명이었지만 돌아온 건 셋이었다. 하필이면 그중 유일하게 없는 아이가 해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 어리둥절하게 제 부모의 품에 안겼다. 흘긋 주변 분위기를 살피다가 와락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개울 근처에서 놀다가 어느 때부턴가 해진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되물어도 아이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젓거나, 지레 겁을 먹고 제 가족들 틈바구니에 숨었다. 그중 한 아이가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하고 중얼거린 말에 나는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아이가 무사해 다행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 나는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산속을 헤맸다. 아마 그때 운이 나빴거나 잘못했더라면 거기서 나마저 길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리 산을 빙빙 돌고, 길이 나 있지 않은 숲속까지 들어가 이 잡듯이 뒤져도 해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 얼굴은 이미 온갖 분비물들로 엉망이었다. 남편은 이러다 나까지 잘못되겠다며 나를 억지로 달래고, 실종신고를 한 뒤 내일 다시 와 보자며 나를 억지로 잡아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내려오니 이미 다른 가족들은 다 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그 순간만큼 강한 모멸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해진은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집으로 되돌아가기 무섭게 자신의 방에서 해진이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이었다. 신발 한 쪽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나머지 한 쪽만 현관문 앞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태연해 보이는 아이는, 달뜬 표정으로 나를 보기 무섭게 산에서 연어 떼를 봤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와 있었다면서, 분명 알을 낳으러 강을 건너던 거라고. 나는 그만 해진이 무사한 것을 보자마자 현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는데, 해진은 되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해진은 그때의 일을 가감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마치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에는 퍽 어울리지 않았으나 안색 한 번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듣는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일주일 내내 혼났는데, 그때는 내가 왜 혼났는지도 몰랐을걸.”

  이어지는 정적. 잡음 하나 없이 조용한 순간이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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