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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개:어린 당신에게 바치는 편지」3

「만개:어린 당신에게 바치는 편지(下)」, 싱아 만개:어린 당신에게 바치는 편지(下) 싱아 ‘영아, 토요일 11시에 A역 7번 출구 쪽에서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실 거야.’ 누가 보면 떼인 돈을 받으러 가는 사람인 줄 알 만큼 퍽퍽한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A역 7번 출구 앞에 다다랐을 때쯤엔 어쩐지 손끝과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싶어 손등으로 눈가를 꾹꾹 문질렀다 뗀 순간 달콤한 향을 반쯤 드러낸 바람 냄새가 코끝을 찔러 왔다. “영아.” 그 목소리가 불러주는 이름이 뭐라고, 손등으로 꾹꾹 문질러 댔던 눈가엔 이내 물기가 어렸다. 뚝뚝 흘러내리는 것들의 기저에 깔린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온이 맞닿았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두어 달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게 무색할 만큼 맞닿은 온기를 갈구하고 싶어졌다... 2020. 4. 27.
「만개:어린 당신에게 바치는 편지(中)」, 싱아 만개:어린 당신에게 바치는 편지(中) 싱아 흥밋거리로 보낸 것은 아니지만 끝말잇기로 정말 주고받아도 되느냐고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두 번째 편지에 대한 답장을 시작으로 며칠은 끝말잇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정확한 규칙에 맞춰 끝말잇기를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생각에 따라 단어를 적었다. 수학여행으로 가서 시리도록 눈에 담았던 안목 해변이 문득 생각나 적기도 했으며 아무 생각도 안 들 땐 유명한 연예인 이름도 썼다. 그런 유의 단어들만 따로 모아둔 사전이라도 있는가 상대는 주로 몽글하고 폭신한 어감의 단어만 골라 적었다. 구름도 그냥 구름이 아닌 뭉게구름, 양떼구름이었고 비도 그냥 비가 아닌 여우비, 이슬비였다. 끝말잇기가 끝나고 서너 줄의 문장이 담긴 편지를 보내게 된 건 막연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그.. 2020. 4. 20.
「만개:어린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上)」, 싱아 만개:어린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上) 싱아 저의가 궁금했다. 하늘 아래 당신의 피붙이라고는 나 하나뿐일 텐데. 정확히 말하면 당신에겐 저주스러운 핏줄일 테지만. 그래도 내겐 일말의 기대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를 늘어놓아도 당신의 품에 안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당신도 힘들었을 테니까. 혀끝에 걸린 ‘엄마’ 라는 쓰디쓴 두 음절은 뱉지 못해도 ‘보고 싶었어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노란 가로등 불빛 벤치 아래 당신을 기다리던 다섯 살의 나는 어느새 열여덟이 되었다.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보육 시설을 전전하다 삼 년 전 이곳 누리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재정 상태가 꽤나 열악하던 전의 시설과 달리 누리원에서는 내 몫을 뺏.. 2020.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