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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or 에세이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읽고」, 장효정

by 談담 2023. 2. 20.

*윤하: 친구 이름

 

오랜만에 윤하랑 홍대 근처에서 보기로 했다. 윤하랑 ‘홍대 에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윤하가 전시회를 좋아한다고 해서 어린 왕자 전시회를 보자고 했다. 근데 윤하가 알고 보니 어린 왕자의 광팬이라고 해서 바로 우리 코스에 넣게 되었다. 사실 어린 왕자를 읽은지 너무 오래돼서 윤하 만나기 전에 한 번은 읽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홍대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 앱으로 읽게 됐다.

 

신기한 건 내가 어린 왕자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어린 왕자’ 하면 굉장히 유명한 일러스트로 만 머릿속에 남아있었지, 어린 왕자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여정을 겪었는지는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와닿았다.

 

어려서 읽은 후로 거의 기억해내지 못했던 인물은 가로등지기였다. 가로등지기는 아주 작은 행성에서 밤이 올 때마다 가로등을 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인데, 아무도 보지 않아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가로등을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어릴 때 가로등지기의 내용에 눈이 가지 않았던 건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내는 게 중요했고, 단기적인 성취 가 눈앞에 있는 게 당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보다 '인생이 장기전이구나' 가 느껴져서 가로등지기의 생활이 내 현실처럼 와닿았다. 매일 뛰어난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어떤 모습의 '나'이든 '나'로 받아들이는 것도 현재 를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싶다.

 

윤하는 여우가 나오는 장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여우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었어서 조금 의외였다. 여우는 '길들여지는 것'에 의의를 두는 캐릭터인데, 요즘 나는 '사람들도 각자만의 길이 있겠지.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일 텐데 나 자신을 사람에게 모두 주진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인 것 같다. 여우가 '길들여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온전한 추억을 남기는걸 되게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길들여지는 것'은 항상 흔적을 남기고 어려운 과정이라 요즘은 자꾸 무덤덤해지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다.

 

내 생각들이 자꾸 투영됐던 책인 것 같다. 조금 아쉬웠던 건 전시회에서는 어린 왕자 애니메이션이 상영될 때 하나 재미없다는 듯이 떠나갔다는 거다. 하나하나 메시지가 있는 장면일 테지만, 그 사람들도 아마 어린 왕자 이야기를 많이 까먹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어쩌면 나도 그 장면들에서 아직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챙겨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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